1인기업&독립출판 <동동 출판사>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이 많아, 중학생 무렵부터 머릿속에 기획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기획 구상은 항상 "이런 건 왜 없지? 왜 하면 안되지?"라는 물음에서 나왔어요. 그리고 그런 아이디어들을 모아 늘 출판하고 싶었어요. 열살 무렵부터 시와 소설 쓰기를 즐겨하고, 열일곱부터는 에세이 쪽으로도 눈을 돌린 덕에 글쓰기와 출판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컸죠. 부모님의 반대만 아니었다면 진작 순수미술 공부를 했겠지만, 반대를 이기지 못하고 타협해서 문학 쪽으로 관심을 두었다가 앞날 걱정에 또다시 타협해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취업보다 프리랜서 영한 번역가로 일하기를 택했지요. 하지만 프리랜서 일은 처음부터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파견계약직으로 금융회사를 전전하다가, 몸이 크게 아프고나서 제가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를 다시 떠올릴 수 있었어요. 문화전시기획과 출판기획이 바로 제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동동 출판사>를 처음 만들 때 누구나 그렇듯이 사업자등록을 하는 게 가장 큰 관문이었어요. 정식으로 사업을 하게 되는 게 마음에 큰 부담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어머니의 말이 늘 제 발목을 잡았어요. "실패하면 안된다.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살기 힘든 세상에서 너는 더 쉽게 실패하고 더 힘들게 일어서야 할 것이다." 아버지의 말도 늘 저를 끌어앉혔죠. "같은 성과를 내더라도, 너는 여자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남자가 받는 인정의 반도 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늘 남자보다 두 배의 결과를 내어야 한다. 그래야 그와 동등하게 인정받을 수 있다. 그리고 남자는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고 재기할 수 있는 나이대가 여자보다 높다. 네가 무언가 하고 싶다면 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 지금은 아내가 된 당시의 애인 덕분에 이 모든 말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사업을 하고 꿈꾸던 일들을 모두 시도해보도록 격려해주었어요. '딸'이라는 속박에서 교육받지 않은 자유로운 아내에게 "실패하면 왜 안돼? 나쁠 때도 있지만 좋을 때도 있는 걸. 주저앉지 않고 계속하면 되는 거야."라는 이야기를 듣고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거침없이 사업자를 열고 이것저것 기획하기 시작한 때가. 사업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 하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걱정어린 시선들이 쌓이고 쌓여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지지 않으려고 무리하다 보니 규칙적인 생활이 흐뜨러지며 몸과 마음이 많이 무너지더라고요. 특히 압박이 심한 상황에서 "너, 그거 안되면 어떡하려고 그래?"라는 말은 저를 쉽게 무너뜨렸어요. 그러다보니 격려보다 염려가 앞서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되었지요. 염려의 말 하나에 짓눌려 생각 속에 갇히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요. 그리고 이런 생각이 나중에 들더군요. '난 자신 있어서 이 일을 시작했는데, 왜 실패할 거라고 걱정해야하지? 안 되는 일을 애초에 왜 시작하냔 말이야. 만약 이번이 성공적이지 않더라도 다음에 더 잘하면 돼. 큰 한 걸음이 못 되더라도 작은 진전을 이뤄낸 걸 테니까. 난 잘할 수 있어. 괜찮아.' 마음을 추스리고 나서 한 일은 규칙적인 생활을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 꼭 아침에 일어나고 되도록 밤 열두시에 잠들기부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제가 어떤 시간에 가장 업무효율이 좋은지, 언제 아이디어가 가장 많이 떠오르는지 자신을 탐구했어요. 이때 읽은 책 세 권(아래 소개)이 제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 WHEN 시간의 심리학 * 그들이 어떻게 해내는지 나는 안다 *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 그 다음으로 한 일은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포스트잇에 각각 적어 벽에 붙여놓는 것이었어요. 매일 보며 다음 프로젝트 기획을 어떻게 진행할까 끊임없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기분 내킬 때마다 들고 다니는 수첩이 달라서, 각 수첩에 적어놓은 아이디어들을 정리하며 하루를 시작하기도 하고요.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인권 관련 출판기획, 문화전시기획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인권 관련 출판기획, 그리고 문화전시기획을 하겠다고 했을 때 다들 "돈 안 되는 거 뭐하러 뛰어드느냐?"는 말을 많이 했어요. 그럴 때마다 "돈을 많이 못 벌어도 적자 나지 않고 이윤이 조금이라도 남을 수 있다면 저는 상관없다."고 대답했죠. 바이섹슈얼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느라 고생하고, 성차별과 성폭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 세월들 때문에,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키워드는 제가 절대 놓지 못하는 부분이 되었어요. <동동 출판사>의 기획들을 통해 소수자의 이야기가 담긴 책과 작품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서 소수자들의 이슈가 가시화되고 사회적으로 많은 부분이 개선되기를 바라요. 그리고 영화, 드라마, 마케팅 등에서 소수자 혐오적이지 않은 컨텐츠들이 주를 이루게 되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립니다. <동동 출판사>의 지금과 내일 1. 출판기획 1) 퀴어여성을 위한 섹스 가이드 베이직 2) 퀴어부부 죽음 준비하기 3) 세계 퀴어/여성 대상 복지 프로그램 연구 논문 4) 성소수자 부부를 위한 재무설계 5) 유아를 위한 성평등한 모험 동화책 2. 한국여성아트페어 (강제적/자발적) 여성 작가가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만든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합니다. 3. 보스 마켓 '여성으로 읽히거나 살아온'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부스를 열고 네트워킹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기획 중인 다른 것들은, 1) 가정폭력/성폭력 생존자이자 수감자인 (강제적/자발적) 여성을 위한 인문예술 클래스 열기 2) <엄마의 증언 : 딸을 위해 한 것들> : 여성 개인의 역사와 세대 간 여성 연대를 기록하고 전시하기 3) 노숙인 여성 대상 생리컵/생리대 무료 나눔하기입니다.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2019년이 지나기 전에 위의 기획을 모두 해내고 싶어요. 그리고 2019년 상반기 사업목표는 (1) 정식 사무실을 얻고, (2) 직원 1명을 고용하는 것이랍니다. 중장기 목표는 '노숙인 여성, 장애인 여성, 탈가정 청소년 여성, 미혼모를 위한 직업훈련 지원'과 '여성 창작자와 여성대표 스타트업 투자 및 콜라보레이션'입니다. 더 나중엔 대기업이 되어서 문어발식 사업을 펼치고, 꼭 엔터테이먼트까지 손을 뻗치고 싶어요. <동동 출판사>는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물론 이미 앞서 나아가신 분들도 많지만, <동동 출판사>는 성소수자 여성이 자신을 드러내고 사업적으로 성공해 널리 알려진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성소수자들에게 사회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적 메시지를 전하고,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기업대표, 사장님인 여성" 롤모델을 하나 더 제시할 수 있겠지요. 여성대표로서 남기고 싶은 이야기 이제 창업 3년차를 갓 넘긴 회사 대표이지만,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가는 여성대표로서 다른 여성 리더들에게 이런 말을 전하고 싶어요. 여자가 크게 되려면 실패도 하는 법입니다. 대표로서의 자기 노출과 상품/프로젝트 홍보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모든 일을 완벽하게 시작하려고 하지 마세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주변에 자꾸 이야기해야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기획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꺼리지 마세요. 자신의 역량을 의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일을 벌이세요.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고, 늘 더 나아진 다음을 생각하세요. 자기 객관화를 빌미로 스스로를 의심하거나 자신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마세요. 꼭 휴식을 취하세요. 특히 창작자의 경우, 현재의 기획 혹은 이전의 기획에 대한 부정적 코멘트들이 다음 기획을 고민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거나 압박과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면, 자신이 단단해지기 전까지 절대 후기나 코멘트를 찾아보지 마세요.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작한 일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잘 할 거예요. 앞으로 더 잘 해나갈 거예요. 함께 나아갑시다. 세상은 우리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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